
본당소개
성당안내
성 앙뚜안 다블뤼 보스턴 한인 성당에 오신 여러분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저희 본당은 보스턴 대교구 소속으로 매사추세츠주, 뉴햄프셔주 그리고 메인주에 유일한 한인 천주교 공동체 입니다. 한국의 언어와 문화 그리고 정서 안에서,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바탕으로 사랑을 실천하고 기도하는 신앙인으로 성장하고자 노력합니다.
가톨릭 신자로서 주님안에 하나되는 본당 공동체는 성체 성사와 고해 성사를 중심으로 기도하는 삶을 지향하며
주님의 은총과 성모님의 전구에 의지하여
모든 신자들이 세례성사로 시작된 하느님과의 삶을 진실되게 살아가고자 합니다.
이 복된 삶의 여정을 새 신자분들과 함께 걸어갈 수 있게 되어 기쁩니다.
여러분을 이곳 보스턴에서 만나게 되어서 주님께 감사 드리며, 다시 한번 환영의 인사를
전합니다.
“그들이 모두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
아버지, 아버지께서 제 안에 계시고 제가 아버지 안에 있듯이,
그들도 우리 안에 있게 해 주십시오.
그리하여, 아버지께서 저를 보내셨다는 것을 세상이 믿게 하십시오.
그리고 아버지께서 저를 보내시고, 또 저를 사랑하셨듯이
그들도 사랑하셨다는 것을 세상이 알게 하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7.21-23]

주보성인 소개 - 성 앙뚜안 다블뤼 성인 (1818년 ~ 1866년)
조선 천주교회 제5대 대목구장을 역임하신 앙뚜안 다블뤼 성인은 프랑스 아미앵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1841년 사제로 서품 되셨습니다. 성인은 파리 외방전교회에 입회하여 이듬해 극동 선교사로 임명되시고 마카오에서
김대건 신부와 함께 충남 황산포에 도착하여 공동체 주변의 신자들에게 성사를 주었고, 점차 더 먼 곳에 있는 신자들을 방문하기 시작 하였습니다.
병오박해가 있던 1846년 새남터에서 순교하신 김대건 신부 소식을 듣고 페레올 주교와 함께 피신하며 수리치골에 도착한 뒤에는 몇몇 신자들을 모아 신심단체인 ‘성모성심회’를 조직 하였습니다.
수년동안 순회 전교를 하지 못한채 소년 신학생들을 가르치던 중 다블뤼 신부는 1856년부터 조선 교회사 및 조선 순교사 사료를 본격적으로 수집하기 시작하였으며, 신입 교우들을 위한 교리서도 편찬 하였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사전 편찬 작업을 이어 받았는데, 이 사전은 1866년 병인박해 후 선교사들에 의해 보완되어『나선소사전(羅鮮小辭典) 』이란 이름으로 간행 되었다.
그 후 다블뤼 주교는 1861년 6월 15일 최양업 신부가 문경에서 병사하자 최 신부가 활동하던 경상도 남부 지역을 떠맡아 선교 하였습니다. 그리고 1862년에는 그동안 수집 정리해 온 조선 교회사 및 조선 순교자들에 대한 자료들을 파리 외방전교회 신학교 교장 알브랑(Fran ois Antoine Albrand)에게 보내어 “다블뤼 비망기”라고 불리는 것으로 달래(Ch. Dallet) 신부는 이것을 바탕으로 하여 1874년에 『한국 천주교회사(Histoire deI’Eglise de Cor e) 』를 편찬 간행하였던 것입니다.
현재까지 알려진 다블뤼 주교의 저서와 역서로는 『영세대의(領洗大義) 』,『성찰기략(省察記略) 』, 『다블뤼 주교 비망기』, (사본 전 4권, 제 4권이 『조선 순교사 비망기』), 『신명초행(神命初行) 』상.하, 『회죄직지(悔罪直指) 』, 『성교 요리문답(聖敎要理問答) 』, 『천주 성교 예규(天主聖敎禮規) 』 등이 있습니다.
다블뤼 주교는 1866년 3월 11일 거더리에서 체포되었고, 이튿날에는 위앵 신부와 오메트르 신부가 자수하여 그와 함께 서울로 압송 되었습니다. 두차례의 신문을 받은 끝에 군문효수형의 판결을 받고 1866년 3월 30일 충청도 갈매못 바닷가 모래사장에서 순교 하셨습니다.
1968년 10월 6일 로마 베드로 대성당에서 교황 바오로 6세에 의해 복자품에 오르고 1984년 5월 6일 서울 여의도에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성인품에 오르셨습니다.